묵상

마가! 나의 아들!(8.24토)

탕자의 형! 2024. 8. 24. 14:40

[벧전5:12-14]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Pe 5:12-14, KJV]
12 By Silvanus, a faithful brother unto you, as I suppose, I have written briefly, exhorting, and testifying that this is the true grace of God wherein ye stand.
13 The church that is at Babylon, elected together with you, saluteth you; and so doth Marcus my son.
14 Greet ye one another with a kiss of charity. Peace be with you all that are in Christ Jesus. Amen.

베드로 후서로 넘어가야 하는데,
오늘 본문말씀중에 나를 멈추게 하는 단어가 있다
베드로가 "내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마가"에 마음이 멈춘다
마가 마쿠스 마가요한!
나의 사역을 동역하는 네팔형제의 이름도 마쿠스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9년전 네팔전도여행에서 만났던 마쿠스형제를 권하여 DTS를 받게하고 1년동안 제자양육을 하고 함께 네팔로 들어왔다
네팔로 들어와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고 한국에 데리고 들어가 목사안수를 베풀고, 돌어와 목회자훈련학교를, 교회개척을, 예배당건축으로 함께 동역할 뿐 아니라 함께 먹고 한 집에 머물고 있다
마쿠스는 나의 아들과 같다
마쿠스의 와이프 꺼비따는 딸과 같고 마쿠스의 딸인 알린은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마쿠스를 어디에서도 나의 아들이라 말하지 않았음을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깨닭았다
책임지기 싫은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이다

또한
사역가운데 마쿠스의 연약함을 정죄하며 판단하고 있다는 마음이다.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함이다

오늘 본문의 마가와 이름도 같은데 말이다

마가요한은
바나바와 바울의 갈라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등
전도여해중 연약함을 들어내고 포기한 이가 아닌가
베드로가 아들로 품고 양육하고 기도하였기에 나중에 바울과도 다시 동역하며 마가복음서의 저자로 쓰임받았지 않겠는가?
내 안에 마쿠스를 베드로처럼 품고 기도할 때
네팔의 마쿠스도 마가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는 위대한 전도자가 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제게 마쿠스를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아들입니다
마쿠스를 네팔교회에 마가처럼 위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처럼 마쿠스를 섬기길 소망하며 결단합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